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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힐링]화려하면서도 고요…아름다움의 절정 동백나무

사시사철 변함없는 동백나무

 

-박형순의 신비로운 나무의 생태

 

동백나무는 상록활엽소교목으로 수고15m, 직경50cm까지 자라나 보통은 수고5m 정도 자란다. 수평적으로 황해도의 대청도가 최북단이고 남쪽의 해안에 주로 분포하며 수직적으로는 제주도에서 표고 1,100m까지 분포한다. 해풍과 염기에 매우강하고 비옥적윤한 토양을 좋아한다.

꽃잎이 거의 수평으로 퍼지는 것을 뜰동백(var. hortensis Makino), 백색꽃이

피는 것을 흰동백(for. alb ipetala H. Chang), 어린가지와 잎 뒷면의 맥상 및

자방에 털이 있는 것을 애기동백(C. sasanqua Thunb.)이라고 한다.

꽃은 양성화로 적색이고 1개씩 액생 또는 정생하며 화경이 없고 반 정도 벌어지며 소화경포는 둥글고 겉에 짧은 백색 털이 있다.

꽃받침 잎은 5개이며 길이 1~2cm로서 난상 원형이고 꽃잎은 5~7개가 밑에서 합쳐지며 길이 3~5cm로서 수술과도 합쳐지고 수술은 노란색으로 90~100개가 있다. 꽃밥이 황색이고 자방에 털이 없으며 암술대가 3개로 갈라지며2~4월에 개화한다. 겨울철에 피는 연분홍색 꽃은 우아하고 상록의 잎은 광택이 있고 질감이 좋아서 관상수로 가치가 있다. 꽃의 색상은 백색, 적색, 홍색, 분홍, 연분홍, 얼룩무늬꽃 등 다양하다.

한때 뭇사람들의 금선(琴線)을 울렸던 노래 가락을 좋아 한다. 이것이 이름있는 시인의 작품이 아니라도 상관없이 좋다.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왜 동백꽃이 이러한 슬픈 줄거리로 노래에 나타나는지 나는 모르고 있지만 동백꽃은 아직 젊은 여성에게 큰 매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다.

이 노랫말처럼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고 붉은 꽃이 가지 끝에 대게 한 개씩 달리는데 꽃 대궁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은 남쪽해안과 섬들에 국한 되어 있다. 서해안에서는 경기도옹진군 백령면 대청리가 동백나무가 자라는 최북단이고 동해안에서는 울릉도가 가장 북쪽이다. 전남 여수의 오동도는 동백으로 이름난 섬이며, 충청남도 서천 해안 서면 마량리에는 동백나무 동산이 있는데 내륙지방으로서는 동백나무가 자라는 북쪽 한계이다. 그 곳에는 큰 나무들이 많은데 이것들은 심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바닷바람 치는 곳인데 지금은 이것이 보호되고 있다. 울주 앞바다 눈섬에는 동백나무가 많기에 동백섬으로 부르고 있다. 동백나무 꽃은 이와 같이 해양성의 꽃이다.

동백나무는 극동지방에 있어서 난대를 대표하는 수종의 하나이고 일본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다. 동백나무를 카멜리아(camellia)라고 부르는데 아시아의 난대 열대지방에 나고 약 100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서양에는 동백나무가 없었는데 지난달 카메르란 사람이 동양을 여행하고 그때 동백나무를 유럽으로 가져갔다. 그때 프랑스의 사교계에서는 이 꽃이 인기를 모았다고 하는데 카메르가 가져갔기 때문에 카멜리아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따라서 나무 이름으로서의 카멜리아는 원래 사람의 이름 이었다.

동백나무와 닮은 것에 산다화(山茶花 또는 茶山花)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일본 특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로 동백나무와 인연이 가까운 것은 노각나무다. 꽃모양이 많이 닮아 있고 다같이 차나무과에 속하지만 잎이 겨울에 떨어지는 것이 다르고 잎의 생김새도 다르다.

동백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잎이 또한 좋아서 일본에서는 많은 품종들이 알려지고 있다. 품종의 분류는 주로 꽃 모양(홑꽃 또는 겹꽃), 꽃의 크기, 꽃 색등을 근거로 하고 있고 몇 백가지의 품종이 있다. 이런 변이가 발견되면 그때마다 하나의 품종으로 만들어지는데 있다. 앞으로도 많은 동백나무의 품종이 나올 것으로 생각 된다.

눈이 오는 데도 동백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그 안에 무서울 정도의 열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끝 쪽에 꽃이 붙는 것도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정열의 폭발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붉다 못해 토해버린 피의 농도를 높혔고, 진하다 못해 흰색까지 마셨으니 더 부드럽다 못해 아직은 햇볕을 못 본 젓가슴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수줍어 눈을 감고 내미는 첫 입맞춤에서 감미로움을 느낀 것은 동백꽃잎이 아니라 오히려 아가씨의 것이었다. 색깔 중에서 색깔을 골랐고 부드러움 중에서 부드러움을 골라낸 동백 꽃잎에는 무언가 말 못할 사연이 있어서인가, 그것은 아름다움의 절정이요, 부드러움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불같은 사랑의 꽃 그것은 동백꽃이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로 하는 데에는 동백나무로선 불만이 없지 않다. 추운 겨울이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지만 그들은 혹한기에 꽃을 피워보기까지는 못했지 않은가. 이점을 내새운다면 동백꽃 쪽이 훨씬 뛰어나다. 잎으로 보다는 꽃잎으로 추위를 견디는 그 기개(氣槪)는 더 높이 찬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무어라 해도 동백은 겨울을 상징하는 계절의 꽃을 단다.

동매(冬梅)와 함께 나란히 서고 싶다. 추위를 이긴다는 점에서는 동백꽃이 상징일지도 모른다. 추위와 어려움을 극복하면 으레 아름다움을 나타나게 마련이다.

겨울의 철학의 계절이라면 동백꽃은 철학을 안고 있는 즉 냉철(冷徹)과 냉락(冷落) 그것을 몸속에 숨기고 있을 것이다. 청적(淸寂)과 적조(寂照)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백꽃을 특히 중국의 시인들이 사랑했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혹한에 늠름(凜凜)하게 견디어 내기에 세한(歲寒)의 친구로 말했다.

동백을 청렴과 절조 굳은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고 거기에 높은 가치관을 뽑아내려는 풍조가 배양 되어 있었다. 때로는 동백나무를 엄한지우(嚴寒之友)에 넣어 제일화(第一花)로 추켜 올린것도 이유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청순(淸과純)과 아취(雅趣)를 바라보는 강렬한 동경에도 불구하고 동백나무의 벌거벗은 아름다움이라고 도 말 할 수 있는 우미(優美)와 선려(鮮麗)라는 반대방향의 가치도 응시 하면서 이 두 가지 면을 모아서 한층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그것을 바라보는 미(美)의 의식도 배양 되어 왔었다.

화사한 봄날에 피는 개나리, 살구나무, 벚나무, 앵두나무, 진달래 등은 그 꽃에서 고요함을 찾기 어려우나 동백나무에선 소리 없는 고요함을 찾을 수 있다. 화려 하면서도 고요하기란 어려운 것인데 동백나무 꽃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고요하지 못한 것은 대체로 전시적인 느낌이 더하다. 적막한 느낌 그것은 동백꽃의 매력이다.

동백꽃보다 더 숨막히게 아름다운 꽃은 따로 없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맞는 말이다.

동백을 춘자로 쓰고 있는데 옥편을 찾아보면 이 글자는 참죽나무 춘 또는 가죽나무 춘으로 되어 있고 동백나무란 뜻은 찾아 볼 수 없다. 동백은 동백(棟柏)을 표음한 것이고 冬柏으로도 쓴다. 학단(鶴丹)으로 말하는 것은 그 꽃색 붉음에 있고 산다목(山茶木)으로 말하는 것은 차나무와 인연이 가까운 데에서 온 것으로 생각한다. 학청홍(鶴頂紅) 또는 내동화(耐冬花)로 말하는 것도 글자그대로의 뜻이 있는 까닭이다.

왜 동백꽃이 이러한 슬픈 줄거리로 노래에 나타나는 지나는 모르고 있지만 동백꽃은 젊은 여성에게 큰 매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사전 양해도 없이 안방을 마구 찾아간 동백기름의 생리도 생각 해 볼만하다.

“춘”(椿)자에도 동백나무의 뜻이 없는 것이 아니고 이 글자는 참죽나무 또는 동백나무 두 가지 뜻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가죽나무 또는 참죽나무는 장자의 고사에 나타난다. 즉[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길어도 8천년을 봄으로 하고 또 8천년을 가을로 하는 가죽나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춘(椿)이라는 나무는 달관(達觀)적인 말 가운데 나타나는 선목(仙木)으로서 공상적인 요인이 다분히 강한 그러한 나무이다.

우리 한민족과 중국의 한민족은 동방에서 문화교류를 하면서 오래 사는 동백나무를 보고 그러한 공상적인 나무에 비류시켜 동백나무에 춘 자를 붙여온 것은 이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남의 아버지를 춘부(椿府) 또는 춘당(椿堂)으로 말하는 것은 오래 사시는 분 즉 장수를 비는 마음에 곁들이고 있을 것이다.

춘훤(椿萱)이란 춘당 과 훤당 을 말하는 것으로 남의 부모를 존대해서 일컫는 것이며 훤은 곧 북당 즉 주부 가 거처하는 곳으로 어머니를 뜻하게 된다.

훤은 원추리(忘憂草)를 뜻하는 것으로 원추리를 또 의남초(宜男草)라고도 한다.

[의남]이란 마땅히 남자라는 의미이고 아들아이를 많이 둔 분을 말함인데 남의 어머니를 아들 많은 분으로 존대한 것은 그간의 선호의 사상을 잘 나타낸 말이다.

원추리의 꽃은 나리꽃 닮았고 아름답다. 원추리 꽃으로 국(스우프)을 만들면 맛이 일품인데 중국요리에서는 이것이 흔히 나온다. 국물에 붉은 원추리꽃이 둥둥 뜨는데 풍류적인 음식의 일종이 아닐 수 없다.

중국에서는 여자가 원추리를 몸에 달고 있으면 남자를 낳게 된다는 소신 같은 것이 있어서 부인들은 원추리를 대단히 사랑하고 집안 뜰에 몇 포기를 심어 가꾸기도 한다. 이러한 관습은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져서 지난날에 집한 뜰 안에는 원추리를 심어서 특히 여자들이 이 꽃을 사랑했었다.

동백꽃은 질 때 그 꽃이 통째로 뚝 떨어지는 까닭에 불길을 상징하는 나무로 취급되기도 한다.

특히 일본에서 그러한데 춘수락(椿首落)이라 해서 꺼리는 일이 있다.

뜻밖에 생기는 불행한 일은 흔히 춘사(椿事)라고 말하는데 이때까지 싱싱하게 보이던 동백꽃이 소리치면서 덜어져 드디어 썩고 마는 그것을 연상한다면 춘사라는 말이 뿌리 같기도 하다.

동백나무의 꽃이 이처럼 뚝 떨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쁜 병을 다스리는 데 쓰여 지는 습속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것은 역병의 귀신이 동백나무의 꽃 속에 숨어 있다가 꽃이 떨어 질때 함께 떨어져서 죽게 된다는 믿음에서 오는 데 동백나무의 꽃이 피고 지는 것이 바로 동백나무의 정령의 소장에 관계된다는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병을 만들어내는 나쁜 귀신이 아름다운 동백꽃에서 지낸다는 착상은 어색한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니나 병을 뚝 떨어지게 하는 상징을 뚝 떨어지는 꽃에 갖다 붙인 것은 인간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애원하고 호소하게 된다는 약한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동백꽃이 떨어질 때 사람처럼 유언이나 하듯이 소리를 내고 그리고 썩어가는 것이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연상시켜서 사람들은 동백꽃에 어떤 영혼 같은 것을 집어넣어서 생각해 오곤 했다.

중국 당나라 때 동백나무를 해석류(海石瑠) 또는 해류(海瑠)로 썼다는 건데 지난날 우리나라에서도 동백나무에 이러한 한자명을 붙인 것으로 생각 된다. 이때 해는 외국 즉 남쪽지방의 서역이고 그때 사람들은 동백나무와 석류나무는 풍부한 결실성을 가져 자손번식의 상징에 있어서 서로 통하는 것으로 본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동백나무는 많은 열매를 맺는 까닭에 다자다남(多子多男)을 상징하게 되엇고 나아가서 이 나무는 여자의 임신을 돕는 것으로 믿어 졌다. 그래서 동백나무 막대기로여자의 엉덩이를 치면 그 여자는 남자아이를 잉태 할 수 있다는 미신을 밑게 되었다.

이러한 막대기를 묘장(卯杖)이라 말했는데 묘장은 동백나무가 없을 때에는 호랑가시나무, 대추나무, 복숭아나무로도 만들었다. 묘장은 묘추(卯鎚)라 하기도 했다. 여기에 묘(卯)자가 들어가게 된 데에는 고사가 곁 들이게 된다.

우리나라의 동백나무는 아름다운 것이다. 일찍이 정다산 선생은 동백나무를 설명하고 있다. 다산(茶山)이란 호는 차나무에서 온 것인지 또는 동백나무에서 온 것인지 다소 의견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즉 그가 살던 강진의 산정에는 다 가 많아서 다산이라 했다 하고, 또 다산초당의 앞뜰에는 평평한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 돌위에서 다산 선생이 앉아 차를 끓여 마셨다고 한다.

이 돌을 다조(차를 마련하는 부뚜막)라 하는데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다산의 다는 동백이 아니고 차에 통한다.

그런데 다산의 산다에 대한 설명으로서 다산의[다]는 동백나무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기는 하다. 이러한 논의는 덮어두고 선생의 설명을 살펴본다.

[산다는 남쪽지방에 나는 가목(佳木)이고 유양잡조라는 책에는 ‘산다는 키가 높고 꽃의 크기가 치를 넘으며 색깔은 붉고 12월에 핀다라고 되어있다. 본초에는 산다는 남쪽에 나고 잎은 차나무에 매우 닮아 있고 두터우며 한겨울에 꽃이 핀다’라고 있다. 소식의 시에 불꽃같은 붉은 꽃이 한겨울에 핀다라고 있다. 강진에는 다산에 많은 산다를 심겨져 있다. 그 화품은 적으나 잎은 겨울에도 푸르고 꽃이 많이 달린다. 열매에서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바르면 윤기가 나고 아름답게 보이므로 부인들이 소중한 것으로 여긴다. 정말 훌륭한 꽃나무이다. 그런데 조선 사람들은 산다를 동백이라고 부르고 있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을 춘백으로 말하며 대둔산에 이 꽃이 많다. 동백을 전에는 취백(翠柏) 또는 총백(叢柏)이라 했고 한청(漢淸)의 문감(文鑑)에는 이것을 강오(岡梧)라고도 했다. 위의 설명에 의하면 산다는 동백나무를 일컫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동백 숲을 보면 전라남도 돌산면 남쪽 끝에 동백마을이 있고 오래 된 나무가 많은데 동네사람들은 꽃피는 시기에 따라 이것을 추백, 동백, 춘백으로 나누고 있다.

충남 서천군 해안에 동백정이 있고 이 정자가 있는 작은 언덕을 동백산으로 말한다.

약 400년생의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높이는 대개 2~3m 였고 산위에 몰려서 나고 있었다. 화려한 동백산이었다. 400 년생 이란 것은 그곳 사람들의 추정일 것이다.

전남 홍도는 한 개의 섬이지만 모양에 다라 남도와 북도로 나뉘어 지는데 남도의 봉우리를 양산봉이라 하고 이 산에는 동백나무가 많았다. 꽃이 필 때면 홍도는 더욱 아름답게 된다.

때로는 땔감으로 이곳 동백나무가 마구 끊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경남 울산 앞바다에 목도(目島)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동백나무가 유명하다. 동해 쪽에는 섬이 적지만 목도는 뭐니 해도 신기한 존재라고 생각된다.

여수의 오동도에는 동백나무가 많고 전설에 의한면 아름다운 아낙네가 도둑에 쫓겨 물에 빠져 죽고 그 뒤 그의 무덤에서 동백나무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동백꽃의 아름다움은 그 여자의 미모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여자가 죽어서 꽃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남자가 그렇게 되었다는 전설은 들어 보지 못했다.

전남 거문도는 비교적 큰 섬인데 동백나무로 덮여 있다.

꽃피는 거문도는 푸르게 파도치는 물결과 함께 남쪽나라의 신화 같은 존재이다. 거문리 뒤에는 오래된 동백나무 숲이 있다. 흰꽃이 피는 오래된 동백나무도 있었다.

지리산에는 단풍과 깨끗한 계류를 자랑하는 피아골의 웅장한 신비가 있고 그 안에 유명한 사찰 연곡사가 있다. 이절간의 옆에는 굵은 동백나무 4~5그루가 있는데 수백 년 묵은 것으로 생각 된다. 지리산의 천은사에도 큰 동백나무가 있었고 나무 뒤편에 산왕지위 라고 새긴 돌이 서 있었다.

이 동백나무는 산신령에 바쳐진 살아 있는 제물이고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를 드린다. 그 동백나무의 줄기는 대단히 굵은 것이었고 지름이 25cm정도는 되어 보인다.

동백나무는 절간에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도 화려했던 꽃은 아직은 때가 빠른 양 싶은데 어느 순간 뚝 떨어져 그 무상이 불법의 분위기를 도와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생의 영광과 나락(奈落) 이 간일발(間一髮)의 사이에 있다는 것을 동백꽃에서 배울 수 있다.

특히 울산광역시 온산읍 방도리에 있는 목도(目島)에는 동백나무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 대청리의 동백나무숲은 동백나무의 북한계선으로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의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제151호로,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동백나무숲은 제169호로, 전라남도 고창군 삼인리의 동백나무숲은 제 184호로, 경상남도 거제시 학동리의 동백나무숲은 제 233호로 각기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전라남도 여수시의 오동도 또한 동백나무숲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백꽃은 우리 민족의 마음을 순화해 온 것으로 잊을 수 없다. 툭하고 소리를 내어 떨어졌지만 떨어진 뒤에는 한가로이 소리가 없는 그것이 가련하기도 하고 동백꽃을 보는 초봄마다 세월 흐름의 빠름에 놀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골짜기에 피어난 붉은 꽃에 저녁비가 내리고 시냇가의 나무에 봄 구름이 따뜻하게 감겨질 때에는 시인 두보의[산은 푸르고자 하고 꽃은 붉게 타고자 한다]는 그 풍치가 눈앞에 살아난다. 이런한 것에서 인생 삶의 한 모퉁이가 다시 깨달아지게 되면 그것은 다행한 일이다.

나의 정감은 한없이 큰데 한스럽게도 동백나무꽃 너는 왜 나에게 말이 없는가. 그러나 가지 끝에 남아서 피는 철 잃은 꽃송이도 나는 사랑하리라 하는 것은 동백꽃을 사랑하는 어떤 인간 절정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리라.

동백꽃이 피어나는 골짜기라면 어디까지나 나는 그곳을 따라 한없이 발걸음을 옮겨 놓으리라.아름다운 꽃이 너에게 많다 는 것은 너의 큰 자랑이 아닐수 없구나.

<박형순 전 산림과학원 박사/청림나무병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