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 풀꽃나무 칼럼니스트
설렁탕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뜨끈한 국물 생각나는 겨울밤이면 눈 쌓인 길을 헤치고 가서라도 진한 설렁탕을 먹고 오곤 합니다.
주영하 교수의 ‘식탁 위의 한국사’라는 책을 보면 1900년 이전부터 서울 종로 뒷골목에는 설렁탕집이 여럿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 따르면 설렁탕은 당시 백정들이 근대 도시 중심가로 진출해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남은 부산물을 끓여 뚝배기에 담아 팔던 것이라고 합니다.
설렁탕 하면 우리는 으레 ‘선농단’을 떠올립니다. 임금이 제사를 지내고 직접 밭을 가는 시범을 보이는 친경의례가 있었던 선농단에서 설렁탕이란 말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농단에는 선농제 때 향불로 쓰기 위해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 240호 향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를 찾아가려면 지하철 1호선 제기역(동대문구)에서 1번 출구로 나와 안암역 방면을 향해 3~4분쯤 걸어가야 합니다. 종암초등학교 앞 어린이공원과 붙어 있는 선농단은 중국 고대 전설에서 농사를 관장했던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던 제단을 말합니다.
향나무는 선농단이 세워질 때 심어진 것을 보이며, 수령은 5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에는 우리나라의 향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라고 쓰여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덕궁의 향나무는(천연기념물 제194호) 창덕궁이 지어졌을 당시로 계산해서 선농단 향나무보다 많은 700년 정도로 봅니다. 곱향나무로 잘못 알려진 순천 송광사의 쌍향수 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는 지눌 스님이 꽂았다는 고사에 따라 800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향나무는 자생하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구재로 쓰거나 향불 피우는 데 쓰기 위해 심어 길렀기 때문입니다. 내륙에서는 강원도 삼척이나 영월 또는 경북 의성 쪽에 드물게 발견됩니다. 반면에 울릉도에는 어느 곳보다 향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울릉도에서도 통구미와 대풍감의 자생지는 각각 천연기념물 제48호와 제4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 바위틈에 자리하고 있어 완벽한 자생지로 인정받는 곳입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대풍감의 자생지는 그야말로 절경입니다. 큰 키로 곧게 자라는 내륙의 향나무와 달리 울릉도의 향나무는 작은 키로 뒤틀려 자라기 때문에 마치 분재 같은 모습입니다. 바람과 세월이 빚어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향나무는 두 가지 형태의 잎을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바늘잎과 비늘잎입니다. 어린나무일수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뾰족한 바늘 모양의 잎을 내놓습니다. 그러다가 성목이 될수록 점차 부드러운 비늘 모양의 잎을 만듭니다.
일본의 카이즈카 박사는 거의 비늘잎으로만 되어 있고 가지가 나사처럼 꼬이는 품종을 개발했는데, 그 나무를 ‘카이즈카향나무’ 또는 ‘나사백’이라고 합니다. 학교나 관공서 등지에 심어진 나무는 거의 모두 카이즈카향나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럼에도 대개 향나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있습니다. 좋은 식물자원을 가졌으면서도 경쟁국에서 개발한 것을 들여와 심어놓고는 우리의 것으로 잘못 아는 것입니다. 울릉도의 향나무가 꼬인 것은 자연의 작품이지만 카이즈카향나무가 꼬인 것은 사람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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