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태의 가치
[세상사는 이야기] 맛 속의 숲과 바다
나무부자마음부자
2013. 11. 25. 09:06
![]() 바짝 마른 오징어 물에 불려 튀김 해 먹던 시절이니, 먹어보기는커녕 산에 오징어가 산다는 줄 알았다. 첩첩산중에 호랑이가 있다면 믿겠지만 민물새우도 아니고 민물오징어가 있다니. 지금이야 산오징어는 물론이고 중국산 산광어까지 수족관에 넘쳐나지만, 그때만 해도 살아 있는 오징어는 구경도 못해 봤다. 다음해인가 속초에 가서 산오징어부터 찾았다. 참말로 달고 맛있었다. 그리고 사랑하게 되었다. 술기운이 거나해지면 마지막으로 산오징어에 소주 한잔 하자, 외치는 버릇이 지금까지도 여전한 걸 보면 그 사랑 참 오래도 간다. 어쩌면 속초 출신인 그 동기 녀석을 남몰래 흠모했는지도. 어쨌거나 '강원도 산오징어'를 내 첫사랑, 아니 짝사랑의 이름이라 해 두자. 그것을 스페인에서 찾자면 단연 '하부고 하몽'이다. 종이처럼 얇게 썬 하몽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신음소리가 절로 난다. 어느 날 문득 차를 빌려 그곳으로 달려갔다. 올리브숲이 사라지고 도토리나무숲이 펼쳐진 걸 보고 그곳에 가까워진 걸 알았다. 가도 가도 도토리나무. 차를 세우고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은 서로 부대끼지 않지만 또 아주 외롭지는 않을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숲에 바람이 불었다. 풀 냄새 흙 냄새를 품은 바람. 가끔 양들 울음소리와 워낭소리가 섞여 불어왔다. 나무그늘은 향긋하게 서늘했다. 그 숲에 돼지들이 살았다. 도토리를 먹다가, 촉촉한 흙에 누웠다가, 바람소리를 들었다가. 하몽은 도토리 먹은 흑돼지 뒷다리를 1년여 동안 염장해서 만든다. 그날 맛본 하몽은 특별히 맛있었다. 본고장에서 먹어 그런 게 아니었다. 내가 먹은 것이 무언지 알기 때문에 그랬다. 그것은 한 점의 그냥 염장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그 한 점은 한 세계였다. 돼지와, 돼지가 먹은 도토리와, 도토리를 키워낸 나무와,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과, 그 바람에 묻어오는 워낭소리였다. 하몽을 먹는 것은 하몽에 담긴 세계를 먹는 것이다. 단지 먹을거리가 아니라 한 생명으로 대하는 마음을 먹는 것이다. 소금과 정성으로 함께 버무려진 시간을 먹는 것이다. 맛있는 하몽도 하루이틀이지, 슬슬 한국 음식 그리워질 무렵 벗에게 기별이 왔다. 제일 먹고 싶은 게 뭐냐. 돌아오자마자 먹으러 가자 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산오징어에 소주 한잔이지. 그랬더니 요즘 산오징어는 물론이거니와 해산물도 잘 안 먹는단다. 방사능 걱정 때문에. 그럼 생선, 뭐 먹어? 동해 고등어 대신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제주 갈치 대신 세네갈산 갈치를. 더 먼 바다에서 온 걸수록 좋아한다고. 이 바다가 오염됐으니 저 바다로. 그렇다면 더더욱 먹어야겠다. 산오징어. 산오징어를 먹는 건 바다를 먹는 거니까. 바다가 아프고 그래서 오징어도 아프고. 그것이 아프다고, 아니, 아플지도 모른다고, 외면할 수는 없으니까. 나도 그 아픈 세계를 내 몸에 넣으련다. 지독한 식탐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돼지를 도토리숲에 풀어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고를 돌이킬 수도 없을 것이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첫사랑의 이름을 기억하듯, 짝사랑의 아픔을 기억하듯 한 점의 아픈 세계를 입에 물겠다는 것뿐이다. [천운영 소설가] |